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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이후 출생한 미술가들을 소개 해두었으며 출생일 순으로 정렬 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미술의 흐름을 읽을 수 있습니다.

김동원 2006-10-05 04:58 조회 수 5046 댓글 수 0


Olympia. 1863. oil on canvas. 130x190cm. Musee d'Orsay, Paris

 

마네의 “올랭피아”

 어느 시대, 어느 장르를 포함하여 기존의 형식과 내용에서 이단적 표현과 기술, 서술은 당연히 지탄의 대상이 된다. 더군다나 사회적 지위나 작가로서의 명망을 가지게 되면 그 파급 효과는 한없이 넓어진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일종의 헤게모니를 위한 기존 틀의 부정에서 오는 비판이기도하고 미술의 양식과 조류를 파괴하려는 본질을 지키려는 보수의 그늘이기도 하다. 미술외적인 것에서의 반응 또한 만만치 않다. 신분사회 감추어진 노출을 꺼리는 부분적 대상들이 영역의 침범으로 인정 노골적 불만을 표출하는 경우도 있다. 왜 이러한 그림으로 사람들을 당혹케 하는 것일까. 그것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과정을 작가는 즐기고 있는 것일까?

 

고대 그리스 파르테논신전의 지휘와 제작을 담당한 페리클레스와 페이디아스가 신전의 아테나신 방패에 자신들의 얼굴을 넣어 정치적 문제가 된 이후 현대미술의 시조라고도 불리는 뒤샹(1887~1968)이 일으킨 스캔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샘’에 이르기 까지 많은 예술가들은 앞서가는 자신의 예술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세상에 반기를 들기도 하고 정치적 도구가 되기도 하고 혹은 회의를 느끼기도 하였다.

그 안에 19세기 하나의 사건이 프랑스 파리의 문화계를 뒤 흔들어 놓는다.

그 장본인이 인상파 화가들의 대부인 마네였고 그가 1865년 ‘올랭피아’라는 매춘부 그림을 보란 듯 살롱전에 출품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예술이라는 비범하면서도 우아하고 점잖은 귀족사회의 전유물인 살롱전에 천박한 창녀를 모델로 그려 놓았으니 당연한 결과이고 예측한 문제의 발생인 것이다. 당시 살롱전에는 이천 여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유독 마네의 ‘올랭피아’ 앞에서만 관람객들은 넘쳐났다. 관객들은 흥분을 했고 이들은 떼거리로 몰려와 원색적인 비난과 비평을 퍼부었다.

“포르노다. 암놈 고릴라다. 마녀다”라고 작품에 대해 맹렬하게 성토하는 소리가 파리 시내를 온통 흔들어 제3자에게도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미술사를 통틀어 ‘올랭피아’만큼 물의와 소동을 일으킨 작품도 찾기 힘들다. ‘올랭피아’가 전시되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파괴 하려했고 이에 두 명의 경찰을 배치해 작품을 보호해 야 했다.

매일 매일 마네를 비웃는 노래와 패러디 만화가 쏟아져 나오고 마네를 정신적 환자로 몰아 이에 화병이 난 마네가 “사람들은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다”고 울분을 터트린 기록이 지금도 남아 있다.

   

사람들이 ‘올랭피아’를 보고 기겁을 한 것은 현실의 매춘부를 미화하지 않고 너무도 솔직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누드화는 당시 가장 인기 있는 미술의 주제였다. 그러나 비현실적이요, 비인격화된 누드화를 그려야한다는 사회적인 전제가 있었다. 평론가인 카미유 르모니에가 화가들에게 “현실감이 느껴지는 애교점이나 엉덩이에 난 사마귀를 그리지 말 것”을 당부한 것도 이 같은 이유가 있어서이다. 마네는 이런 작가들과 귀족사회의 사회적 약속을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깨버린 것이다. 올랭피아의 머리를 장식한 꽃, 흑인 하녀가 들고있는 꽃다발(고객의 선물)은 그녀가 현실 속의 창녀임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해준다. 꼬리를 바짝 치켜세운 고양이도 발기한 남성의 성기를 노골적으로 암시한다. 매춘부가 장신구, 꽃다발, 흑인 하녀, 고양이를 총동원해 “내 몸을 사세요” “제 몸을 팝니다.”라고 공개적 광고의 대상과 같은 작품으로 당시 남몰래 창녀의 몸을 사던 남성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수치였다.

이는 남성세계에 대한 마네는 천박한 매춘부를 찾아 인육시장을 기웃거리는 추악한 남성의 세계를 폭로한 죄로 그토록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던 것이다.

 

'올랭피아'는 당시 창녀들 사이에 유행하던 이름의 하나였고, 벨벳 끈 목걸이 역시 당시 무희나 창녀들이 애용하던 장식이었다. 머리에 커다란 붉은 꽃을 꽂은 것 하며 손으로 음부를 가린 모습에다 당시 자유분방함과 난교를 상징하는 검은 고양이를 화면 가장자리에 배치해 둔 것을 보면 화가는 그림의 여인이 창녀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강조하였다.

 

다시 그림을 보자. 우르비노의 비너스에서 일부 응용한 올랭피아는 흑인 하녀가 고객이 보낸 듯한 꽃다발을 들고 올랭피아의 눈치를 조심스레 살핀다. 그녀는 머리를 반듯하게 세우고선 차갑고 도도한 시선으로 화면 밖의 방문자인 자신의 고객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그 고객은 또한 당시 파리의 귀족들과 부유한 시민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올랭피아'에 이중으로 불쾌하였고 분노하였다.

먼저 아무리 누드라 할지라도 자신들과는 계층이 현격한 창녀의 있는 그대로의 벗은 몸을 감상한다는 건 어딘가 찜찜하고 불편하였다. 게다가 그녀의 눈초리는 다소곳하거나 애교스럽기는커녕 자신들과의 대등함을 넘어 오히려 위압적이고 냉소적이기까지 하니 화가 치밀지 않을 수 없었다. 한 화가가 깨려고 한 틀은 미술의 표현 한계가 아니라 귀족사회가 지닌 지나친 포장과 신분사회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였다.


김기현(화가, 미술칼럼리스트)


* 김동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10-05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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